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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빌라도의 선택

주일설교
2018.03.16 16:56

빌라도의 선택

조회 수 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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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2018-03-11
본문 마가복음 15장 6절-15절
설교자 임군학 담임목사

빌라도의 선택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들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나’ 라는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도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불행의 인물이 되기도 하고, 많은 실수와 잘못이 있음도 결국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여서 축복의 인물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파는 선택을 하여서 불행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라고 할 때 갈등하고, 고민하였지만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의지하여 주님이 기뻐하는 선택을 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이라고 칭함을 받습니다.  

 

 예수님도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며 선택하셨습니다.

“아버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 합니다”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실 때마다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였습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좋을까요? 아버지의 뜻대로 되는 것이 좋을까요? 아버지의 뜻대로 되는 일들이 더 좋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뜻이 더 좋다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 우리의 목장, 우리의 교회, 우리 나라와 민족도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빌라도는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빌라도의 이름이 항상 언급되어 집니다. 이 빌라도는 로마의 총독으로 이스라엘을 치리하는 자였습니다. 본문은 유월절 이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됩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리하기 위해서 빌라도 총독은 예루살렘의 헤롯 궁에 기거하며 지내게 됩니다.

 

 이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불법 심문을 하며 “사회를 미혹해서 폭동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죄, 로마 정부에 세금을 내지 마라는 했다는 죄, 그리고 자칭 메시아, 왕이라고 주장한 죄” 라는 3가지 죄의 항목으로 모함하여 유대인의 법으로는 할 수 없지만 로마법으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빌라도 총독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아무런 죄를 찾을 수가 없어서 매를 때리고, 풀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많은 군중들을 선동하며 예수님을 대신하여 흉악범인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게 했습니다.  

 

 이 때 빌라도는 총독으로 ‘치안유지, 질서유지’ 때문에 혹시 모를 폭동을 막으려고, 무리를 만족 시키고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넘겨주었습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왜 이렇게 재판에 불려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였기 때문입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하여도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하는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제사장들의 선동에 마음을 빼앗겨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 달라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때 빌라도는 요한복음 19장 4,6,38절에 “죄가 없다“ 라고 총독으로써 예수님을 변호하였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본문 15절 말씀처럼 무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빌라도를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아무리 노력을 하였다 하더라도 최종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결론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도 손해가 올까 두려워서 최종적으로 예수님을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경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을 적당하게 타협하며 내려놓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빌라도처럼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 뿐 마지막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의 선택도 언제나 예수님을 향한 선한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는 빌라도의 잘못된 선택을 통하여 오히려 예수님이 무죄함을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의 증명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증명도 아닌 로마 정부의 총독으로 파견 받은 빌라도를 통해서 ‘예수님은 죄 없다는 것을 증언’ 하게 된 것 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피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손해와 고난을 당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기쁨으로 감당하는 선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빌라도의 선택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육적인 것’이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진리가 아니라 편리함’이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현재의 만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이름‘ 은 수치스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영적인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진리를 선택하며, 영원한 삶을 위해 살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생각해 봅시다.(함께 나누어 주세요!)

1. 빌라도처럼 연약하여서 잘못된 선택이나 적당히 타협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2. 4월1일 부활주일 VIP와 함께 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나요?

 -매일 기도하기, 관심 표현하기(문자, 전화 등), 목장에서 중보하기, 예수님 자랑하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