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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위로하는 은혜

주일설교
2018.01.27 13:23

위로하는 은혜

조회 수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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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2018-01-21
본문 창세기 50장 11-21절
설교자 임군학 담임목사

2018-1-22-주일예배설교 from 허신 on Vimeo.

“위로하는 은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내 마음을 어떻게 잘 다스릴 수 있느냐?’ 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언제나 우리는 내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면 남 탓을 합니다. 남 탓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겨냥 합니다. 우리는 남을 겨냥하며 불평하고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내 탓 인줄 모르고 추론하며 원망합니다. 내가 조금만 마음을 달리하거나, 내가 생각을 조금 더 달리 할 수 있다면, 더 편안하고 쉬울 수 있는데, 우리는 남 탓으로 돌리며 힘들어하고 괴로워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면 더 쉬운 것을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탓하며 상대방과 자신을 더 불행하게 만듭니다. 혹시 우리의 마음이 메말라있지 않은지, 우리의 마음이 메말라 있기 때문에 위로해야 할 줄 알면서도 위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음과 동시에 그의 형제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가 요셉만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이 그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한 나머지 죽이려고 했지만, 죽이지 못하고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부모와 생 이별을 해야 했고, 자신을 미워했던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팔려가는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 이었다면 어떻게 한 평생을 살았을까요? 증오하고 미워하면서 한 평생을 그렇게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오히려 다른 나라에 가서 큰 위치에 올라서 큰 권세를 누리며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이집트에 팔아넘긴 형제들을, 요셉은 용서했고, 사랑했고, 위로하였습니다.

자 ~ 어떻게 이렇게 위로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자신의 삶속에 많은 환난과, 고난이 함께 하였지만. 마음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를 해 하려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불행하게 해도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고 축복하시고, 나를 행복하게하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는 하나님의뜻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하는 그런 믿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우울해하거나 비참해하거나 답답해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따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좋은 사람일까요? 큰 소리치고,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일까요?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기억하고, 자신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계획을 묻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이 큰 믿음의 사람이며 진짜 믿음의 길로 가고 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용서를 했다고 하면 잘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용서를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기고 하나님의 용서를 묵상해야 하는데 우리는 상대방이 잘못하고, 실수한 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용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도 의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집중합니다. 그것 때문에 자기가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행위 때문에 구원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셨기 때문에 용서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용서 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단번에, 영원히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로운 피조물이란 용서받은 사람, 나를 용서하시려고 하나뿐인 외아들을 십자가에 희생하신 것을 믿는 믿음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볼 때 불쌍히 보지마세요.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로를, 용서를 받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큰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세요. 자신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남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요셉이 자신들에게 복수할 것이라 생각하고 겁이 나고 두려워 요셉 앞에 엎드려서 “아우님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며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냐 말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냐는 말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나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소중하게 여가는 사람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감정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 감정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의 말은
자신이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둘째. 나의 자리는 하나님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나는 심판자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사람이며, 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자리에서 겸손했습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복수를 할 수도 있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대신 하기라도 하겠냐”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끝까지 겸손 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셉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이집트 땅에 먼저 보내셨다 말합니다. 사람이 악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실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염려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하게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에, 환경에 집중하지 말고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그런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습니다. 요셉이 성품이 좋아서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도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믿고, 그 믿음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그가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려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보복하려고 하는 사람입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믿어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용서의 마음으로 바라보시길, 하나님의 그 은혜를 간곡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생각해 봅시다.(함께 나누어 주세요!)
1. 용서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용서했던 일을 있었나요?
2. 용서하기 위해서 내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요?
   (먼저 기도하기, 먼저 대화하기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