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묶고, 감싸시는 하나님

by 신배수(하나님의대만목짜) posted Feb 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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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2018-01-28
본문 욥기 42장 1-17절
설교자 임군학 담임목사

2018-01-28-주일예배 설교 from 허신 on Vimeo.

"묶고, 감싸시는 하나님”

 

 오늘 성경의 주인공은 ‘욥’입니다. 욥기 1장1~3절을 보면 욥은 흠이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은 경외하는 악이 없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주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갈 때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먼저 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죄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던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선한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는지 그 사람의 믿음 됨을 보려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복도 받고, 자녀의 복도 받고, 재산도 많은 부자였지만 이 욥에게 까닭 없는 애매한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 돈, 재산이 모두 고난 앞에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욥의 몸까지 병에 걸려 온몸에 종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보통사람의 경우에는 풍족하게 살다가 밑바닥으로 떨어지면 어떤 생각을 많이 할까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욥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주신 분도, 가져가시는 분도 주님이시라 말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 자신을 감싸고 있던, 세상적인 조건들을 축복이라 생각 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싹 없어져버립니다.

 

 이렇게 고난을 받을 때에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욥을 달래고 위로하려고 세 친구들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위로하지 않고 욥에게 회개하라 말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같이 울어주고 위로해주면 좋은 텐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이 아픈 말을 하고,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이 의롭고 정의로운 줄 아는 사람들이 있으며, 자신이 신앙적으로 잘 살고 있다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힘든 일이 많지만 가장 힘든 문제가 있다면 고난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시라고 하는데, 복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하는데 왜 교회에 다니고 있는 나에게 고난을 주시나, 왜 나는 이렇게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고, 살아가려고 하는데 왜 나에게 고난을 주실까, 그 고난이 정말 까닭을 모르는 애매한 고난이라고 한다면 그 고통은 더 심각하고 괴로울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왜 이런 고난을 나에게 허락 하십니까?

왜 내가 이런 고난을 겪어야합니까?“ 라고 하나님 앞에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가 가장 어려울 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고난 앞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신뢰하고, 의지했던 사람인데 나도 고난 앞에 흔들리는 구나 나도 별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면 더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욥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이며,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막아주실 수 있는 고난입니다. 하지만 사탄이 찾아와 욥을 참수하려하고, 넘어뜨리려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시는 좋은 조건들 때문에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이지 그 조건을 빼앗아 가면 욥도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이 욥도 하나님을 미워하고 저주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없으셨다면 하지 말라고, 욥을 괴롭히지 말라!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욥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고,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였지만, 하나님도 욥의 세상적인 조건들을 뛰어 넘는 믿음을, 하나님 자체를 경외하고,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기 때문에 사탄이 욥을 시험하려고 할 때에 욥을 신뢰하고 애매한 고난까지 허락 하신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욥이 고난 앞에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 같습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왜 이렇게 나를 만드셨는지.. 나는 하나님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욥이 이 고난 이후에 이 세친구가 계속 욥을 말로 괴롭히는 도중 욥이 하나님께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받아야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한 너의 아버지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아느냐 물어보신 겁니다. 고난을 받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너의 아버지 하나님인 것을 신뢰하니?" 라고 반대로 물어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난 받고 힘들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시나요? 나의 좋으신 아버지라며 신뢰하고, 계시나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의 아버지야, 내가 너희에게 나쁜 것을 주겠니? 내가 너희가 당하는 고난가운데에도 함께하고 있는 것을 신뢰하니?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 라고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난 앞에 자꾸 이해하려합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인과 결과에 묶여있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계성, 윤리성, 도덕성을 뛰어넘는 분입니다. 세상은 무엇을 잘못해서 벌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믿음에 세계에는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지 못하는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이 무엇을 잘못해서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닌것처 럼 믿음의 세계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과응보의 틀을 깨어 넘는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가 있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저 믿는 것 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아버지 당신을 이해할 수 없으나 당신을 신뢰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귀로만 듣던 하나님이 내가 경험하는 만나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앞에 자꾸 머리로생각하고 이해하려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더 신뢰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상처받는 말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친구들을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용서라는 말은 하기는 쉽지만 행동으로는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들이 욥을 괴롭혔으나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친구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하라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욥이 주님께 자신의 세 친구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욥이 이전에 가진 모든 것 보다 배로 재산을 회복해주셨습니다

 

 용서하면 내가 좋은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혼자 잘나고 똑똑한 것이 아니라 함께 화목하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하나되고, 감싸주는 그런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복 받는 사람’ 이라고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주원가족여러분 신앙생활은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이, 목장이, 교회가 함께 화평하고 함께 사랑으로 섬기며 용서하고 함께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욥처럼 갑절의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바른말 똑똑한 말, 정확한 말, 이치에 맞는 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용서의 말을 하는 사람인가? 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싸는 말을 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시는 것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려고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쓸모없다, 보잘것없다 말하지만 하나님은 너는 존귀하고, 사랑스럽다 말씀 하십니다

 

 오늘도 여전히 나를 귀하게 여기시며 감싸시는 하나님을 경험해야 우리도 우리주위에 있는 사람을 감싸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며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을 신뢰하여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 입니다.

 

* 생각해 봅시다.(함께 나누어 주세요!)

1. 까닭 없는 고난이라고 느꼈던 적은 언제였습니까?

 

2. 그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였나요?

(하나님께 기도하며 물어보기, 목장에서 나눔하기, 묵묵히 주어진 삶에 헌신하기 등등)